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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례: [이슈논쟁] 과로사회를 다시 합법적으로 허용할 것인가 / 이동욱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12. 13. 12:19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이동욱 선생님의 글을 옮깁니다. 

 탄력 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는 많이 일하고 많이 쉬면 괜찮다는 발상으로 

 과로사를 둘러싼 현재까지의 합의를 부정하고, 장시간 노동을 또 다시 용인하겠다는 정책입니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회원이신 이동욱 선생님께서 한겨례에 의사회를 대표해 기고문을 보내 주셨습니다. 

경총(김영완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의 입장 (원문: http://naver.me/FS9JVIEI) 과 비교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 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회 

원문 보기: http://naver.me/FwVcAV5U


[이번 내용은 모두 읽어보시는 게 좋을 거 같아 기고문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원문(http://naver.me/FwVcAV5U)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슈논쟁] 과로사회를 다시 합법적으로 허용할 것인가 / 이동욱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탄력근로제는 일정한 단위기간 내에 평균 근로시간을 준수하는 것을 원칙으로, 기업의 필요에 따라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을 넘는 추가 근무를 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예를 들어, 2주 단위로 적용할 경우 일이 많은 첫 주에는 60시간 일하고 두번째 주에는 44시간 일해 평균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맞추는 식이다. 현재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은 최대 3개월이지만, 경영계는 집중근무가 필요한 업종을 중심으로 단위기간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여야는 이 문제를 연내 처리하기로 했으나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 등으로 논의가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미뤄져 있는 상태다.



이동욱
직업환경의학전문의(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회 회원)


모교 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였다.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내과 중환자실은 36시간을 연속 근무하고 12시간 휴식하는 형태로 한달간 일하는 근무 일정이었고, 근무 중에는 밤을 새우는 경우가 허다했다.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아마도 100시간 이상이었을 것이다. 한달이었지만 아직도 내 몸이 기억하는 시간이다.

얼마 전 수리 서비스를 하는 대기업의 협력업체 노동자를 상담하였다. 그는 아침 7시30분에 출근하여 저녁 8시까지 출장수리 업무를 수행하고 센터로 복귀하여 업무보고를 한다. 자체 시험을 앞둔 시기에는 추가로 한시간 정도 시험 준비를 해야 하고, 그때는 집에 들어가면 밤 열한시가 된다.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65시간에서 많을 때는 75시간까지 된다. 인턴 때의 경험이 떠올랐고 반사적으로 질문이 튀어나갔다. “일하다 죽을 것 같은 기분 들지 않으세요?” “빡센 날엔 정말 죽을 것 같아요….”

2015년 의학 저널 <랜싯>(The lancet)에 보고된 유럽과 미국, 호주의 노동자 60만3838명을 추적관찰한 연구에 따르면, 1주일에 35~40시간 일하는 노동자에 비하여 1주일에 55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하는 노동자에게서 관상동맥질환 발생 위험이 1.13배, 뇌졸중 발생 위험이 1.33배 높은 것으로 보고되었다. 근무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위험은 더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시간 노동은 급성 심장사, 관상동맥질환, 뇌졸중 외에도 고혈압, 당뇨병, 수면장애, 조산, 정신과적 문제, 근골격계 질환과 업무상 사고와 연관성이 있음이 지속적이고도 끊임없이 보고되고 있다.

올해 초 정부에서는 주 68시간까지 가능하던 근로시간을 연장근로 12시간을 포함한 주 52시간으로 단축하고, 특례업종을 축소하도록 법령을 개정하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연평균 노동시간 1763시간(2016년 기준)과 비교할 때,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이 2069시간으로 지나치게 높음을 인정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법 개정 필요성을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현시점에서 삶의 기본권인 건강권을 위해 장시간 노동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상식적이고 당연한 내용을 인정하는 개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1년도 안 되어 정부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기간 확대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티브이, 라디오, 신문에서는 에어컨과 같은 계절산업, 프로젝트성 연구개발 사업 등에 대한 예시를 들어, ‘특정산업’에서의 어쩔 수 없는 단기간 장시간 노동의 필요성을 호소하며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려 하고 있다. 하지만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의 논점은 “그동안의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확보받지 못했던 건강권을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느냐가 핵심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기간이 1년으로 확대된다면 결론적으로 최장 6개월까지 1주 평균 64시간 일을 하는 노동자를 다시 합법적으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정부안대로 탄력적 근로시간제 기간이 6개월로 확대되어도 3개월간 1주 평균 64시간의 노동시간이 합법화된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2018년 초 개정된 근로복지공단의 뇌심혈관질환 업무상 질병 판정 지침을 따르면, 3개월간의 1주 평균 근무시간이 60시간을 초과하면 업무 관련성이 강하고, 1주 평균 52시간을 초과하면 업무 관련성이 증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3개월만 평균 60시간이 넘어도 산재의 원인이 되는 심각한 과로임을 정부도 이미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이는 정부가 정한 업무상 과로를 다시 합법적으로 허용하는 모순에 빠진다. 과로에 대한 건강 안전망이 다시 후퇴하는 것이다.

더욱이 탄력근로제로 인한 실질임금 하락에 대한 우려 또한 존재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업무 성수기에 3개월간 1주 평균 64시간의 노동을 하고, 이후 3개월간 1주 평균 16시간의 노동을 한다면 초과근로 수당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교섭력이 있는 현장의 노동자들은 이런 극단적 경우에 대항이라도 해볼 수 있으나, 교섭력이 없는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은 이런 불이익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겪을 것이 분명하다.

정부가 현재 주도하는 탄력근로제 확대 논의는 장시간 노동을 하더라도 합의만 해두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정부의 메시지는 결국 제도적·행정적으로 직접적인 감시나 계도가 쉽지 않은 소규모 사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더욱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2016년도 전국사업체조사에 따르면 전체 종사자 중 65.0%가량이 50인 미만 사업체에 소속되어 있다. 2014년도 근로환경조사에 따르면 주당 55시간 이상 일하는 비율이 전체 노동자의 24%에 달한다. 이들은 상당 부분 소규모 사업장에 근무한다.

필자는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한 공공기관에서 50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를 관리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내게는 최근의 탄력근로제 확대를 둘러싼 논의가 ‘힘든 시기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너희는 건강 위험을 떠안고 살아도 괜찮다’는 무서운 합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경총의 입장 (원문: http://naver.me/FS9JVIEI) 과 비교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글로벌 경쟁력 높이려면 ‘시간과의 싸움’은 필수다 / 김영완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탄력근로제는 일정한 단위기간 내에 평균 근로시간을 준수하는 것을 원칙으로, 기업의 필요에 따라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을 넘는 추가 근무를 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예를 들어, 2주 단위로 적용할 경우 일이 많은 첫 주에는 60시간 일하고 두번째 주에는 44시간 일해 평균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맞추는 식이다. 현재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은 최대 3개월이지만, 경영계는 집중근무가 필요한 업종을 중심으로 단위기간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여야는 이 문제를 연내 처리하기로 했으나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 등으로 논의가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미뤄져 있는 상태다.



김영완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


지난 11월5일 정부와 국회는 근로시간 단축 개정법 시행에 따른 산업현장의 위기에 공감하면서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에 대한 합의를 하였다. 이후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이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지만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고, 노동계의 반발 또한 거세다.

법 개정으로 근로시간이 대폭 줄어든 상황에서 기업이 다른 경쟁자에 앞서 일감을 확보하고, 확보한 일감을 적기에 최상의 품질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장이 병행돼야 한다. 더욱이 글로벌 경쟁에서 기업이 선도적으로 시장수요에 대응하고 고품질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시간과의 싸움’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유연한 근로시간 활용으로 특정 기간 근무집중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이런 이유로 검토되고 있는 것이 탄력적 근로시간제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물량이 많을 때 많이 일하고 적을 때는 적게 일하는 제도다. 물론 전체 평균은 최대 1주 52시간에 맞춰야 하므로 일하는 시간 총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절히 활용하면 사용자는 생산물량 변동에 따라 탄력적으로 근로시간을 조정하여 생산성을 높이고 경영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 또한 근로자도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휴일을 증가시키는 등 일과 생활의 조화를 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장점에도 현행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짧은 단위기간과 까다로운 도입 요건으로 현장에서 활용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먼저 현재 3개월로 제한되어 있는 단위기간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신제품 출시 경쟁을 벌이는 스마트폰 개발 기업은 통상 출시 예정일 1년 전부터 3~6개월간 집중 개발에 들어간다. 건설이나 조선업도 발주기간을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기상 악화 등의 이유로 마지막 3개월은 집중적으로 근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게임업계는 제품 출시를 앞두고 크런치모드(제품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집중근무)가 일반적인데 주 52시간을 지키면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신제품 출시 등을 위해 6개월 이상의 장시간을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정보기술(IT), 연구개발(R&D) 분야 및 벤처 스타트업, 호황·불황에 따라 수요변동이 큰 기업의 경우 현행 3개월 단위로는 근로시간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24시간 연속공정이 필요한 장치산업의 경우 일정 수준으로 기계를 가동할 필요가 있어 근로시간을 장기적으로 분산해 운용해야 하므로 단위기간을 현재보다 늘릴 필요가 있다.

주문생산이 많은 노동집약형 중소기업의 고민은 더욱 크다. 금형 업체의 경우 유럽이나 미국에서 수주를 하면 선적까지 6~8주간 밤·주말 근무를 해야 겨우 납기를 맞출 수 있다. 국내 중소 제조업체 가운데 40% 이상이 대기업에 납품하는 하도급 업체인 현실에서 납기를 맞추기는 3개월 단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성수기 집중근로기간에는 숙련도가 요구되기 때문에 계약직 등 비정규직으로 대체할 수 없고 성수기만을 위한 단기 전문인력을 채용하는 것 또한 현실적으로 어렵다.

단위기간만큼이나 문제가 되는 것이 엄격한 도입 요건이다. 현행법상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하려면 ‘사전에 근로일과 그 근로일의 근로시간을 특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직원이 1천명인 기업은 근로자마다 3개월 단위기간의 출근일과 그날의 근로시간을 사전에 정확히 짜놓아야 하는 것이다. 설사 근로시간을 설정하더라도 중간에 휴가·휴직·퇴사 등 결원이 발생하면 그 내용을 전부 변경해야 하는 부담이 매우 크다. 몇 개월 뒤, 어느 날의 스케줄표를 미리 정확히 짜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다. 자동차 제조업의 경우 신제품 출시 이후 판매 정도에 따라 생산을 늘려야 할 경우가 생기는데 이러한 상황을 예상해 미리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정하기가 어렵다. 제도의 본질을 고려해 근로시간 조정의 ‘기본 계획’만을 협의하는 수준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재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전체 근로자를 대표하는 자와 서면합의를 해야 한다. 특정 직군 또는 특정 근로자에게 도입하고자 할 때에도 전체 근로자 대표와 합의해야 하다 보니 대상 근로자들의 의사가 왜곡되는 상황이 초래된다. 실제로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에 긍정적인 근로자들이 있음에도 노동조합의 반대로 도입조차 못하고 있는 사업장이 있다. 직무별, 부서별로 근로시간 운용이 상이할 것이기 때문에 탄력적 근로시간제 활용에 대해서는 노무관리 융통성을 위해 해당 근로자 대표와 협의를 거치는 것이 합리적이다.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고 아직까지는 창의적·선도적 역량이 부족하며 기능적·추격형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선진 경쟁국보다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하는 절대량과 집중도’가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국내외 경영 여건이 어려운 상황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개선을 통해 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강화할 때 일자리도 늘어날 수 있음은 당연한 이치다.